해준이랑 석율이랑 연애했는데 석율이가 병걸려서 시한부 인생 선고받음 좋겠다.
몸이 자주 아프고 잠도 잘 못깨겠고 가끔 눈앞이 하얗게 변해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몇번 반복되자 안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간 것이 시작이었다.
'왜 이 상황이 올때까지 안오셨습니까,'
'5개월을 못 넘길 것 같습니다.'
석율은 막상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그 순간에 무덤덤했다.
믿기지도 않았고, 부러 별것 아닌 일처럼 지나가지 않을까 싶어 연인인 해준에게 조차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입에서 피를 토해낸것은 그로부터 보름이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준식에게 왕창 깨지고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한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그는 기침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기침이 멈추지 않고 혼란스러울 정도까지 됐을때, 그가 손을 땐 바닥에 이제 막 터져나온 핏물이 한웅큼 있었다.
일이 밀렸던걸 잊고 있었다며 다음에 다시 만나야겠다고 웃어보이는 석율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석율은 집에 돌아가 그 이후에도 피를 잔뜩 토해냈다.
그는 핏물이 가득 고인 눈앞에 모습을 보며 생각한 것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해준이었다. 나 없으면 해준이 형 어떡하지? 멀쩡하던 애가 죽으면 형은 어떤 반응일까.
아니지, 형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덜 슬프지 않을까.
그는 무덤덤히 떠올랐던 생각에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을때, 제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생각이랑 마음은 다르다더니, 진짠가 보다. 형...' 푸하 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그것도 계속해서 올라오는 눈물에 개수대에 몸을 기대어 울었다.
"한석율.'
결국 들켰다.
석율이 일이 밀렸던게 떠올랐다고 나가자고 한 날, 해준은 석율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리고 그가 먹는 약이 있었다는 것도. 그 약의 성분이 어떤 것인지 도.
해준은 석율이 제게 설명하는 날까지 기다렸을 뿐이었다. 이토록 독한 진통제를 먹는 이유 또한 알고 싶었다. 그런데 기다린 그의 말이 '헤어지자'는 말이라니. 우린 이어지지도 못할 사이고, 형은 곧 집에서 결혼하라는 얘기도 잦았잖아요. 저같은 사람이랑 살 것도 아니고...
참는듯 잠잠히 그의 말을 들어주는 듯, 어디서 부터 잘라야 할지 고심하는 것 같던 해준이 분노를 터뜨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쾅! 크게 울리는 벽소리에 석율이 입을 다물었다. 넌,
"나한테 너의 가치가 그 정도 밖에 안된다고 생각했어?"
살 것도 아닌데 그냥 가지고 노는 정도의?
석율이 입을 꾹 눌러 닫고 그를 쳐다보지 못하자 해준은 화를 참는듯 한번 더 쿵 벽을 치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게 아니면 뭔데요..."
긴장이 풀린 석율은 힘겹게 벽에 기대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고작 저 말조차도 울고 웃을 정도로 저는 지쳐있었다.
이정도면 정이 떨어졌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석율은 힘든 것을 남에게 숨기기 어려워졌다. 감각이 무뎌질거라 생각했는데, 감각이 아니라 감정이 예민해졌다. 헤어져서 그런것인지, 속을 게워내는 일이 잦아져서 인지는 분간하지 못했다. 알고 싶은 호기심도 들지 않았다. 회사를 버텼던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던 해준과의 이별은 석율에게는 잃을 것도 없다는 감정만이 남아 패기로울 정도였다.
그 이후 얼마간 해준을 볼 수 없었다. 저가 내려가지 않았고, 해준은 애초에 업무시간엔 올라오지 않았으며, 그들이 만나는 것은 약속된 오후, 데이트 시간 뿐이었으니. 그렇게 보름 가량을 아무 감정없이 회사, 집을 반복하며 날렸다. 몸은 점점 살이 빠지고 있었다.
곧이 곧대로 아무 것도 없는 속을 게운 석율이 해준이 보고 싶다고 간절히 원한 다음날.
팍, 제 얼굴을 후려친 찢어진 종잇자락들. 한동안 잠잠하니 심심했냐고 짜증을 짖누르는 준식의 말을 조용히 고개 숙이며 들었다. 내가 이거 필터 작성일 기준 오름차순 적용하라고 안했냐? 물음인지 확답을 들으려는 것인지 불분명한 명백한 놀림투에 석율의 눈동자의 촛점이 흐려지고 잇었다.
"그럼 니가 하면 되잖아."
정말 좋지 않은 타이밍에 그가 올라왔다.
석율은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흠칫하고 고개를 쳐올려 그를 봣다. 해준의 표정은 잠잠해보엿지만 그 특유의 불편한 심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한석율씨. 잠깐 나 좀 봅시다."
뒤에서 뭐라고 신경질을 내느 준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으나 석율은 제 손목을 잡은 해준의 손감각만에 집중하고 있었다.
해준이 석율의 병명을 알게 됐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석율은 제 방패였던 해준에게 토해내 듯 다 말해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다 알아주길 바랬다고, 안떠났으면 좋겟다고 생각햇다고 울음을 터뜨린 석율을 끌어안는 해준의 팔이 너무도 그리웟다.
다시 만난 둘은 다시는 떨어지기 싫은 쌍둥이처럼, 같은 날 반차를 내고 퇴근햇다.
둘은 매일처럼 전망 좋은 곳에서 외식하고, 대로를 걷는 것 대신 해준의 손길을 따라 해준의 집으로 갔다. 집안은 차가워있었다. 언젠가였던지, 오래전 해준의 집에 왔을때는 항상 훈훈하게 데워져 석율을 기다리던 집이었는데, 해준은 추위를 잘 타던 석율과 집에 오지 않자 난방을 키지 않았다.
추위를 타는 듯 하던 석율이 해준의 품에 안겼다. 해준도 그를 마주 안았다. 꾹 눌러 품을 끌은 둘은 금방 킨 난방이 집을 데우기 전까지, 그 후에도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둘은 서로의 집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밖에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겨야 할 것 같았던 그때와는 달라졌다. 같이 마주앉아 먹는 밥이 좋았다.
얼마 가지 않았다. 상태가 심해진 석율이 속을 자꾸 다시 게워냈다. 병원에 입원해야만 한다는 의사의 말에 아예 병원에 입원하게 된 석율은
다 죽어감. 얼마남지 않은 순간 해준이 괜찮다고 석율이를 끌어안으며 아무일 없을거라고 속삭이면서 석율이 머리에 고개 묻으면서 울컥 우는거지. 석율이는 해준이 우는거 느끼면서 모르는척 그의 품에 안김.
석율이 죽고, 술만 마시면. 멍하니 걷다보면 석율의 오피스텔 앞에있는 자신을 보는 해준. 석율아, 하고 우는 해준이도 보고싶었다. 결혼도 안하고 일만 하는 것도 보고싶엉...왤케 해준석율은 먹먹한게 좋을ㄲ